** ‘없음’이 주는 고요함과 풍경, 카페와 편의점이 없는 마을에서의 일상을 소개할 예정이다.
삶은 언제부터인가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작은 움직임 하나조차도 어플 하나로 해결되는 시대, 도시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너무 많은 정보와 소음, 그리고 선택 속에서 살아간다. 편리함은 곧 효율로 연결되었고, 효율은 쉼 없는 삶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휴식은 점점 사라져갔다. 그래서 어느 날, 무언가 ‘없는’ 곳으로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불편한 곳, 일부러 느린 곳, 일부러 조용한 곳. 오늘은 그 결핍 속에서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그 결심을 이끌었던 순간을 소개하려고 한다.
"표지판이 사라진 길, 이름 없는 풍경들"
그 마을은 관광지로 소개된 적도, 특별한 명소로 언급된 적도 없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뚜렷한 정보는 거의 없고, 블로그 후기 하나조차 드물었다. 길 안내 앱도 중간쯤에서 더 이상 길을 알리지 않았다. 국도에서 한참을 더 달리고, 이어진 흙길을 조심스럽게 지나 도착한 마을은, 마치 시간에서 한 걸음 비껴선 듯한 조용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마치 한 편의 흑백 사진 같았다. 계절은 분명 흐르고 있었지만 풍경은 멈춘 듯 보였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듯한 오래된 집들과 나무들이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콘크리트보다 흙과 돌, 철제보다는 나무로 구성된 환경은 도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문은 대부분 열려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외지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 대신, 잠시 쉬었다 가라는 권유가 먼저 나왔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조용함'이었다. 익숙하게 따라붙던 도시의 배경음들이 사라지자, 오히려 귀가 먹먹해졌다. 자동차 소리도, 광고 방송도, 누군가의 통화도 들리지 않는 풍경 속에서 처음엔 적막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적막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었다. 곧 그 속에서 자연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바닥을 기어가는 곤충의 작은 움직임까지. 그것은 오히려 도시보다 더 선명하고 풍부한 감각이었다.
마을은 크지 않았다. 20여 가구 남짓의 집들이 언덕을 따라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었고, 골목은 바람이 먼저 길을 안내해주는 듯 구불구불 이어졌다. 길을 걷다 보면 손수 지은 돌담과 나무 울타리, 그리고 오래된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낡았지만 견고한 것들, 느리지만 흔들림 없는 풍경들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평온해졌다.
시간의 흐름조차 달랐다. 시계가 아니라 햇살과 그림자가 하루를 나누었다. 아침이면 마당에 앉은 노인이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점심 무렵이면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전파가 약해 휴대전화도 자주 끊겼고, 인터넷은 아예 닿지 않는 시간도 많았다. 그런 환경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더 이상 외부와 연결되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누구의 소식에도, 뉴스에도 휘둘리지 않는 하루는 생각보다 단순했고, 오히려 풍성했다.
"없는 것이 만들어내는 진짜 여유"
마을에는 카페도, 편의점도, 편리한 매점도 없었다. 무엇이든 사려면 차를 타고 30분 이상 나가야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불편했다. 아침에 마실 커피가 없고,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선 미리 챙겨와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러한 결핍은 또 다른 풍요로 바뀌었다.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는 직접 불을 피우고 물을 끓여 드립백 하나를 조심스레 내렸다. 조그만 손놀림에 마음을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고요함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편의점 대신 마을 입구의 작은 밭이 간식거리가 되었다. 할머니가 건넨 오이 하나, 나무에서 딴 자두 한 알이 도시의 달콤한 디저트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여유와 정이 거기 있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누구도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화는 조용했고, 몸짓은 작았다. 하지만 그 속에 오랜 세월을 견뎌낸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흙바닥을 쓸고 다니는 빗자루 소리, 닭이 알을 낳으며 지르는 울음소리가 작은 마을의 배경음이 되어 주었다. 상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건, 필요한 것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도, 벽에 걸린 고리 하나도 저마다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고, 사람들은 사는 데 필요한 것을 굳이 바깥에서 찾지 않았다. 이곳에선 '있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저녁이 되면 마을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드문 탓에 하늘은 더 빨리 검어졌고, 그 위로 별들이 수없이 떠올랐다. 도시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별빛이었다. 별을 올려다보는 일이 특별한 의식처럼 느껴졌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우주의 한 조각이라는 감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고요했고, 그 고요는 위로였다. TV도, 음악도, 소셜미디어도 없는 시간 속에서 책 한 권과 촛불 하나면 충분했다. 오히려 그 단순함이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조용했다. 일부러 이곳을 찾아왔다는 이들과 나눈 짧은 대화 속에는 비슷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선택하느라, 더 이상 무엇이 나에게 진짜 필요한지 모르게 되어버린 삶. 그로부터 잠시 멀어지기 위해 이 조용한 마을을 찾았다는 말에, 묵직한 공감이 일었다.
"고요 속에서 발견한 것들"
며칠간의 체류였지만, 그 마을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었고,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는 곳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마을엔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본다’는 말은 단순히 그곳에서 머문다는 의미를 넘는다. 그곳의 리듬에 나를 맞추고, 그 속의 일상이 되어보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시간에 쫓기고 선택에 지쳐 있던 내가,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루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쉬며,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누군가와 짧은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채워졌다.
무엇이든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없음’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은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해 달려왔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가장 단순하고 조용한 순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마을은 일깨워주었다.
카페도 없고 편의점도 없는 마을은 그래서 특별했다. 그곳엔 고요함이 있었고, 자연의 숨결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의 며칠은 짧은 체류가 아니라, 잊고 있었던 나를 다시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마음이 번잡해질 때면 그 마을의 풍경이 떠오른다. 표지판 없는 길, 별빛 가득한 밤, 바람이 건네던 안부. 그 모든 것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