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이 아닌, 머무는 여정으로서의 의미 있는 시간-오래된 성당,절,사찰에서의 하루를 보여드릴 예정이다.
삶이 빠르게 흘러갈수록 우리는 종종 속도를 늦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력은 빼곡하고 시계는 늘 성급하게 움직이며, 언제부터인가 쉼이라는 단어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쉼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특별한 여행 방식이 있다. 바로 '머무는 여행'이다. 단지 풍경을 스쳐 지나가거나 유명한 장소를 기록하는 여행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며 그 공간이 가진 리듬에 자신을 맡기고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여정. 이 여행 방식은 특히 오랜 역사와 고요한 분위기를 간직한 성당이나 사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오늘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느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순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요 속에 머무는 시간, 오래된 성당과 사찰에서의 하루"
한국 곳곳에는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사찰과 백 년 가까운 시간을 담고 있는 성당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에게 마음을 쉬게 해주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공간들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발걸음은 느려지고, 시선은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머문다.
충청남도 예산에 위치한 수덕사는 대표적인 예다. 백제 시대에 창건된 이 사찰은 깊은 산 속에 자리해 있어 그 자체로 한적함을 품고 있다. 이곳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꾸준히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새벽 예불, 참선, 발우공양 등 사찰의 일과를 체험할 수 있다. 하루 혹은 이틀, 그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하는 산사의 고요함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전라남도 담양의 죽녹원 인근에 위치한 죽림사 또한 마음의 숨을 고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대나무 숲이 주는 청량한 기운 속에서 사찰 특유의 정적은 더욱 깊게 다가온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산책을 하거나 조용히 머무는 데 의미를 두며, 실제로 몇몇은 묵언수행을 겸해 자신을 성찰하기도 한다. 그저 바닥에 앉아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당에서도 같은 경험이 가능하다. 전라북도 전주의 전동성당은 1914년에 건립된 이래,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외관과 조용한 분위기로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바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 내부로 한 발 들어서면 외부의 소음은 자연스레 멀어진다. 차가운 돌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정면 제대 앞에서 잠시 머무는 기도, 그리고 무심히 앉아 있는 동안 조용히 울리는 파이프 오르간의 음색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한 감정을 전한다.
이러한 공간에서의 '머무름'은 관광지에서 흔히 느끼는 일회성 감동과는 결이 다르다. 그곳에 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공간이 주는 울림에 조응하며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잠시나마 우리를 삶의 본질에 가깝게 이끈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닌, '어떻게 머무느냐'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느끼는 사찰과 성당의 하루"
오래된 건축물과 함께하는 하루는 단지 일정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체험이 된다. 그 안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한 세기의 무게를 품게 된다. 머무는 여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덕사의 하루는 새벽 예불 소리로 시작된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간, 스님의 목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지고, 나무탁자의 일정한 두드림이 텅 빈 대웅전 안을 메운다. 그 울림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잔잔하게 만든다. 이후에는 잠시 묵언의 시간을 갖거나, 경내를 산책하며 차분한 사색을 즐긴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행위가 된다.
죽림사에서의 아침은 더욱 자연에 가깝다. 새들이 지저귀고, 이슬이 맺힌 대나무 사이를 바람이 지나간다. 걷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려지고, 걷는 행위 자체가 명상이 된다. 길가에 핀 들꽃 하나, 바위에 고인 물 한 줌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전동성당에서는 하루 중 정오 무렵이 가장 인상 깊다. 햇살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색색의 빛으로 바닥을 물들일 때, 방문자는 그 고요함에 압도된다. 종교적 신앙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와 그 안에 흐르는 시간의 무게는 자연스레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간단한 기도를 올리거나,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체험이 되는 공간이다.
이렇듯, 사찰과 성당에서의 하루는 천천히 흘러간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는 놓칠 수 없는 감정과 풍경이 숨어 있다. 찰나의 감정과 순간이 아닌, 지속 가능한 울림을 주는 체험.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 울림은 오래도록 남는다.
"머무는 여행이 전하는 내면의 변화"
이러한 머무는 여행은 우리 내면에 조용한 변화를 일으킨다. 도시의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는 때로 빠름을 멈추는 법을 잊고 산다. 그러나 성당과 사찰은 우리에게 잊고 있던 시간을 회복시켜준다. 익숙한 소음 대신 낯선 정적 속에 있으면, 오히려 감각은 깨어난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이러한 감각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수덕사의 발우공양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먹는 행위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수행이다. 아무 말 없이 한 그릇의 밥을 비우는 그 순간, 평소의 나와는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묵언, 사색, 명상 모두가 ‘머무름’의 방식이며, 그 방식은 자신과 마주하는 수단이 된다.
죽림사에서는 고요함이 변화의 시작이 된다.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겸허함과 감각의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일상 속 관계와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찰에서의 경험이 마치 오래된 파문처럼 삶 곳곳에 스며드는 것이다.
성당에서의 머무름 또한 비슷한 변화를 일으킨다. 전동성당의 침묵은 사람에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종교적 신앙이 없어도, 그 공간이 주는 정서는 누구에게나 의미 있게 다가온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 기억의 한 조각을 마주하는 시간. 그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자신 안에 새롭게 깃든 평온함을 발견할 수 있다.
머무는 여행은 목적지보다 과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은 늘 정적이며, 때로는 스스로를 시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본질을 더 선명히 보게 된다. 오래된 성당과 사찰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곳에서 보내는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깊은 여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