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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 마을의 평일 여행기

by 난모모띵 2025. 6. 4.

해수욕장이 조용한 계절, 고요함이 풍경이 되는 시간-겨울 바다 마을의 평일 여행기에 대해 알려드릴 예정이다.

 

도시는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멈추지 않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그 틈 사이로 마음의 균열이 자주 생긴다. 하루의 끝마다 피로는 깊어지고, 반복되는 루틴은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그렇게 삶이 너무 단단해질 무렵, 문득 어떤 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끄럽지 않고, 꾸밈없으며, 흘러가는 시간에 순응하는 공간. 그런 곳을 떠올렸을 때 겨울 바다와 그 너머의 마을이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겨울은 계절 중 가장 적막한 얼굴을 하고 있다. 특히 바닷가 마을은 계절의 끝자락에 더욱 정직하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가득하던 해변과 상점가, 골목길이 모두 자신의 숨결로만 가득 찬 겨울의 풍경으로 돌아간다. 바다는 묵묵히 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마을은 조용히 계절의 무게를 견딘다. 이처럼 외부의 소음이 사라진 공간에 서면, 그제야 비로소 내면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오늘은 활기찬 주말이 아닌 조용하고 고요함만이 나를 반겨주는 평일의 겨울 바다 마을 여행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겨울 바다 마을의 평일 여행기
겨울 바다 마을의 평일 여행기

 

"붐비지 않는 해변에서 시작된 여정"


도시의 겨울은 건조하고 바쁘다. 길가에 쌓이는 것은 낙엽보다 광고 전단이고, 차가운 바람은 옷깃보다 마음부터 먼저 파고든다. 그런 계절 한가운데, 문득 '멈춤'이 필요했다. 사람 없는 바다, 텅 빈 골목,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하루를 상상하다 보니, 자연스레 겨울 바다 마을이 떠올랐다. 따스한 계절의 소란을 비워낸 공간, 그곳에서야 비로소 내 안의 고요함도 살아날 것 같았다.

해수욕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여름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 공간이 가장 제 역할을 다하는 계절은 겨울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해변은 그제야 본래의 표정을 드러낸다. 고요하고, 차분하며, 때로는 스산한 바람조차 위로처럼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겨울의 동해안을 걷는 일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감정의 복원에 더 가까운 행위였다.

동해안의 마을들은 피서객이 떠난 뒤 깊은 숨을 내쉰다. 주말이 아닌 평일, 특히 한겨울의 평일에 찾은 고성의 바닷가 마을은 말 그대로 고요함 자체였다. 점포의 셔터는 대부분 내려져 있고, 해변 근처엔 걷는 이 하나 없이 정적만이 머물고 있었다. 그 정적은 쓸쓸함이라기보단, 오히려 묵묵한 환대처럼 느껴졌다.

모래밭은 한기가 감돌았지만, 대신 발자국 하나마다 자신의 존재가 또렷이 남았다. 파도는 매서운 겨울바람과 부딪히며 낮게 밀려들었고, 그 리듬은 꾸밈없이 일정했다. 사람 소리 없이도 풍경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됐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풍경이 있다. 겨울 바다의 고요함은 그런 종류다. 먼 바다 너머로 지는 햇살, 수평선을 따라 흐려지는 빛, 그리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공기. 그 어떤 언어보다 깊은 정서를 전해주는 장면이었다.

 

"마을의 시간을 걷다"


해변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작은 바닷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은 관광지라기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터전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간판과 닳은 계단, 바닷바람에 색이 바랜 지붕들이 낯설면서도 정겹게 다가온다.

어느 마을 어귀에선 한 아주머니가 작은 화목난로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 조용한 미소로 답해 주셨고, 그 짧은 순간에도 따뜻함이 스며들었다. 여행은 늘 새로운 풍경을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낯선 친절에 마음을 기댈 줄 아는 여유에서 깊어지기도 한다.

마을의 시간을 걷는 일은 빠르지 않다. 이곳에선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진다. 해풍에 눅눅해진 벽화, 다 닳은 간판 아래 늘어진 어망,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미세한 파도 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빠른 도심의 시계와는 다른 시간대를 만들고 있었다.

작은 항구 근처에 이르자, 한쪽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이 조용히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닻은 묵직하게 내려져 있었고, 간간이 부표가 파도에 흔들리며 금속성의 짧은 소리를 냈다. 그 배들은 겨울을 쉬는 중이었다. 여름의 분주함이 지나간 지금, 그 누구보다 바다를 오래 바라본 배들이 그저 묵묵히 머물고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안온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잠시 앉아 차가운 방파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바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마음속 어지러운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 이유 없는 불안함이 고요 속으로 스며드는 기분.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평안이 있었다.

 

"고요한 계절이 남긴 것들"


겨울의 바다는 여행자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그저 존재하고, 바라보기를 기다린다. 말 대신 느끼는 것. 바라보며 듣는 것. 그 단순한 행위를 통해 여행자는 스스로와 대면하게 된다. 평일의 조용한 마을, 인적 드문 해변, 느릿한 발걸음은 결국 여행의 방향을 밖이 아닌 안으로 틀게 한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 이미 해는 산 너머로 져 있었다. 붉은빛과 회색이 뒤섞인 하늘 아래, 전깃줄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천천히 날아갔다. 전등이 켜지고, 마을은 조용히 밤을 맞았다. 그 풍경 속에서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음속엔 이상할 만큼의 충만함이 남았다.

도시로 돌아와 며칠이 지나도, 문득 차가운 바람이 불거나, 잿빛 하늘이 드리우는 날이면 그날의 해변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그 마을의 고요한 공기, 그 차분한 시간의 흐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사람 없이도 풍경은 완전할 수 있고, 말없이도 감정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겨울 바다는 조용히 알려주었다.

겨울 바다 마을의 평일 여행은 특별한 순간을 좇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쌓여 만들어낸 감정의 결을 소중히 여긴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고요한 골목에서, 낯선 찻집의 창가에서. 그 모든 순간이 여행의 목적이자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하루는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조용한 계절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간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듣는 이만 있다면, 그 고요 속에서 여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