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의 시선으로 본 '관광객 없는 동네' - 실제 귀촌인이 추천하는 조용한 마을 탐방기를 들려주는 글이다.
도시에서의 삶이 각박하게 느껴질 때면 사람들은 ‘조용한 시골’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막연한 이미지 속의 시골은 대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거나, 계절마다 인파가 몰려들어 진정한 ‘고요’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 진짜 조용한 마을은 현지인의 일상 속에 숨어 있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그 속에 진짜 삶이 있고, 오래 머물수록 깊이 스며드는 풍경이 있다. 이 글은 실제 귀촌인의 시선으로 살펴본,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마을을 직접 걸어보고 기록한 조용한 탐방기이다.
"지도에도 잘 보이지 않는 마을, 그래서 더 오래 머무르고 싶은"
전남 구례군의 ‘광의면 중대마을’은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이곳은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의 동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며, 특별한 명소도 없다. 하지만 이 마을에 들어선 순간, 귀촌인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마을은 하루 종일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자리하고 있고, 논밭 사이로 난 길에서는 이따금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침이면 안개가 천천히 걷히고, 저녁이면 산 그림자가 마을을 덮는다. 굳이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일상의 흐름과 다르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해의 위치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고, 휴대폰 신호가 약한 날에는 오히려 그 불편함이 반갑게 느껴진다. 텃밭에서 오이를 따는 어르신, 우물가에서 고무대야를 닦는 할머니, 장화를 신고 집 앞을 쓸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은 이곳만의 평화로운 일상이다.
마을 어귀의 작은 정자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기보다는, 새로운 이웃으로 맞아주는 듯한 온기다. 귀촌인은 이 마을에서의 첫 해를 “낯섦보다 익숙함이 먼저 스며드는 곳”이라 말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의 색, 수확 철마다 울리는 경운기 소리, 비 오는 날이면 마을길을 따라 흐르는 빗물까지. 이 모든 것이 조용한 마을의 풍경이다.
광의면 외에도, 구례의 용방면 마산마을은 산수유나무가 집집마다 심어진 조용한 마을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산수유축제 시기를 피해, 그 이전이나 이후의 평일 오전에 이곳을 찾으면, 작은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조차 또렷하게 들린다. 그 고요한 감각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깊다.
또한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 위치한 ‘평사리 마을’은 섬진강과 지리산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고즈넉한 마을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이곳은,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돌담길과 오래된 흙길이 인상적이다. 강변을 따라 걷는 길에서는 들풀과 바람 소리만이 동행이 되고, 마을 주민들은 방문객을 스스럼없이 맞아준다. 봄이면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황금빛 들녘이 펼쳐진다.
"관광지가 되지 않은 이유, 오히려 그것이 이 마을의 매력"
많은 마을들이 관광자원화를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곤 한다. 하지만 조용한 마을이 끝까지 조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교통이 불편하거나, 도시 기준의 편의시설이 적다는 점이 일반인들에게는 단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없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오히려 이 마을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강원도 평창의 ‘미탄면 마하리’는 귀촌인의 또 다른 추천 마을이다. 해발 700미터 고지에 자리한 마을은 겨울이면 하얀 설경으로 덮이고, 여름에는 하늘과 맞닿은 듯한 청량한 공기를 자랑한다. 도로는 굽이굽이 이어져 있지만, 마을에 도착하면 그 긴 여정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여기에선 개울물 소리, 바람 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만이 들린다. 마을회관 옆 장독대에는 아직도 장이 익어가고, 낮잠 자는 고양이 옆을 지나면 하루가 천천히 흘러간다.
마을에는 카페도, 슈퍼도 없다. 매일 아침 트럭 하나가 동네를 돌며 생필품을 나르고, 가끔 마을회관에서 열린 장터가 유일한 ‘쇼핑’이다. 그러나 귀촌인은 말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괜찮아요’다. 불편한 것이 있어도, 금세 익숙해지고,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 간의 느긋한 정서다.”
또 하나의 조용한 마을로는 경북 영양군의 ‘일월면 송하리’를 소개하고 싶다. 영양은 밤하늘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송하리는 그 안에서도 깊은 산자락에 자리해 밤이면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진다. 천문대에 가지 않아도 마당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경험이 가능하다. 이곳의 고요함은 낮보다 오히려 밤에 더 짙게 다가온다.
경남 남해의 ‘물건리 마을’은 바다와 맞닿은 경사진 논과 밭이 어우러진 남해만의 전형적인 풍경을 품고 있다. 낮이면 갈매기 울음소리와 파도 소리가 마을의 일상이고, 해질 무렵이면 붉은 노을이 바다와 논을 함께 물들인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민박에서 하루 머무르며, 해산물 요리를 함께 나누는 시간은 여행자에게 이 마을만의 정서를 선물한다.
이처럼, 조용한 마을은 단지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낮추고 마음의 소음을 덜어내는 장소다. 특히 짧은 여행으로도 충분히 ‘머무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마을은 번잡한 여행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잠시라도 머무르면, 그 마을이 마음 안에 들어온다"
단지 한두 시간 스치는 여행으로는 이 마을들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루 이틀만이라도 천천히 걸으며 머문다면, 조용한 마을의 풍경은 어느새 여행자의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전북 진안의 ‘상가막리’는 산세 깊은 마을로,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에는 마을 입구의 매화나무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여름에는 텃밭에서 막 따낸 오이가 마당 한켠에 널려 있다. 이 마을을 찾은 귀촌인은 처음에는 '너무 조용해서 불편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편함은 이내 ‘불필요함’으로 바뀌었다. 필요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없어도 되는 것들이었음을 이곳에서 깨달았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작은 쉼터나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강아지들이 한가로이 마을길을 누빈다. 하늘을 보며 앉아 있기만 해도 시간이 흐르고, 말 한마디 없이도 하루가 채워진다. 그렇게 이 마을은, 관광객이 오지 않아 더욱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된다.
또한 충북 괴산의 ‘산막이옛길’ 인근에 위치한 ‘목도리 마을’도 주목할 만하다. 이 마을은 나지막한 산과 강줄기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이 만든 포근한 품에 안긴 듯한 느낌을 준다. 낮에는 닭이 우는 소리와 강변을 거니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며, 마을 초입에 있는 폐가 옆 벤치에서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 있다.
이 외에도 전남 강진의 ‘상춘리’는 감나무와 대숲이 어우러진 조용한 마을이다. 길가에 핀 야생화 사이를 산책하며 마주치는 것은 마을 노인의 따뜻한 인사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숲뿐이다. 마을 끝자락의 작은 저수지에 비친 구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상은, 도시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게 만든다.
귀촌인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긴다. “이곳들은 가볼 만한 곳이 아니다. 그냥 살아도 좋은 곳이다. 그래서 잠깐 머물기에도, 충분히 좋다.” 지금 누군가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는 고요 속에서 자신을 다시 마주하고 싶어 한다면, 이런 마을들을 조용히 찾아가보길 권하고 싶다. 지도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하지만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남을 마을들. 그것이 진짜 여행의 목적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