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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바다 옆 기차길’ 도보 여행기

by 난모모띵 2025. 6. 7.

오늘은 사람 없는 '바다 옆 기차길' 도보 여행기에 대해 소개합니다 - 철길 옆으로 펼쳐진 고요한 바다를 따라 걷다.

 

사람 없는 ‘바다 옆 기차길’ 도보 여행기
사람 없는 ‘바다 옆 기차길’ 도보 여행기

 

 

"도심을 떠나 기차가 달리는 바닷길을 걷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반복 속에서 문득 고요한 바다와 바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사람 없는 조용한 길을 걷고 싶을 때, 그리하여 내가 찾은 곳은 동해선 부근, 특히 강원도 삼척의 ‘해신당 공원’부터 시작해 삼척해변까지 이어지는 기차길 옆 도보다. 이 구간은 기차가 드문드문 지나는 외곽 노선으로, 동해바다를 따라 조성된 철로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한적하다. 이름난 명소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해안 산책로와 달리 이곳은 상업화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삼척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해신당 공원이 나오는데, 이 공원 너머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오늘 여정의 시작점이었다. 길은 말 그대로 철로와 나란히 이어지고, 철길 사이로 풀이 자라 있고, 가끔씩 지나가는 기차의 소리만이 긴 정적을 깬다. 이른 아침이면 더더욱 조용하다. 기차가 멀리서 다가오는 소리는 마치 바다 건너로 퍼지는 낮은 현악기 소리처럼 부드럽고 울림 있게 들려왔다.

철길 옆 산책길은 정비가 덜 되어 있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방파제 위에 앉아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를 듣거나, 갈매기가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다 보면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고요함이 여행의 큰 위로가 되었다.

걷다 보면 중간중간 작은 어촌 마을이 보이고, 오래된 간판과 낡은 지붕을 단 집들이 다정하게 붙어 있다. 그 사이로 난 골목에서 바다를 내다보는 주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는 갓 따온 미역이 들려 있었고, 그는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넸다. 이런 풍경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다.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요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귓가를 스치는 파도 소리, 해안선을 따라 퍼지는 짠내 가득한 공기, 그리고 햇살이 바닷물 위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복잡했던 머릿속을 말끔히 비워주는 듯했다.

 

"걷는 동안 마주한 소리와 풍경"

 

기차길 옆을 따라 걸으며 가장 먼저 느낀 건 ‘소리’였다. 말소리도, 차량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 이 길에는 파도 부서지는 소리, 바람 스치는 소리, 간혹 풀숲에서 들리는 벌레 소리뿐이었다. 그런 자연의 소리들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듯했다. 이어폰은 아예 꺼두었고, 온전히 바다 소리와 함께 걸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증산해변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철로는 완만하게 바다 쪽으로 휘어지며, 좌측엔 바다가, 우측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란히 펼쳐졌다. 기찻길 한 편에 앉아 잠시 쉬며 그 풍경을 바라보았는데, 잔잔한 파도에 반사된 햇살이 마치 수면 위를 춤추는 듯 아름다웠다.

이 구간은 대부분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산책로라기보다 마치 바닷가를 따라가는 숨은 골목을 걷는 기분이었다. 특히 나릿골해변 인근의 철길 구간은 해안선과 철로의 간격이 매우 가까워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오래된 철교와 낡은 신호등은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내 안에서도 잊고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마음속 공간을 정돈하는 일이기도 했다.

도보 중간에 들른 작은 항구, '죽서루' 인근에서는 조용한 포구에 정박한 어선들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는 갓 잡은 생선으로 끓인 매운탕 냄새가 풍겨 나왔다. 점심 무렵이 되어 허기를 느끼고 잠시 그곳에서 따뜻한 국물을 마시며 몸을 녹였다. 작은 항구의 정취는 걷는 이에게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위안이었다.

기찻길 옆으로는 벚꽃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봄에는 분홍빛 꽃비가 흩날리고, 가을이 되면 바다 건너로 붉은 노을이 퍼진다. 사계절 내내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이 길은 언제 다시 찾아도 새로운 감정을 안겨줄 듯했다.

 

"이 길 위에 고요를 쌓고, 기억을 남기다"

 

이 여정의 마지막은 삼척해변에서 마무리되었다. 대형 리조트나 해수욕장으로 번잡한 여름철의 풍경이 아닌, 이른 봄의 삼척해변은 사람도 적고 바람도 차분했다. 백사장은 파도에 닿으며 잔잔히 젖어 있었고, 바다색은 낮은 회청빛을 띠며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기차길을 따라 혼자 걸었던 오늘의 도보 여행은 무언가를 목적 삼지 않은, 그저 ‘걷는 것’ 자체로 충분한 하루였다. 사람 없는 길에서 바람과 소리를 온전히 느끼는 시간은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깊은 고요함을 선사했다.

이와 비슷한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경북 울진의 후포역 인근 기차길도 추천할 만하다. 이곳 역시 바다 옆 철로를 따라 조성된 소박한 길로, 관광지로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용한 풍경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후포항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선 역시 기차길과 나란히 걷는 느낌을 주며, 그 풍경은 한없이 평화롭다.

또한 부산 기장군의 일광해변 인근 철도길도 인상 깊은 도보 여행지다. 특히 동해선 전철이 다니는 이 지역은 새로 정비된 트레킹 코스도 있지만, 그 주변의 자연스럽게 닳은 해안선과 오래된 철로 주변 풍경은 묘하게 향수를 자극한다. 해질 무렵에는 바다 건너로 붉은 노을이 기찻길 위로 길게 드리워지며 하루의 끝을 장식해준다.

추가로 소개하고 싶은 또 다른 여정은 전남 고흥의 '남열 해돋이 해수욕장' 인근 기차길이다. 이곳은 비록 현재는 열차 운행이 중단된 옛 철길이지만, 바다와 맞닿은 산책로로 재탄생했다. 걷다 보면 소나무 숲과 갯바위가 이어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 지역은 유독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해가 수면을 뚫고 떠오를 때 철로 위 풍경은 말 그대로 황홀경이 된다. 아침 이른 시간에 맞춰 걷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 없는 ‘바다 옆 기차길’을 걷는 일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었다. 흔히들 힐링이라 부르는 그 감정은 아마도, 걷는 동안 이어지는 고요한 순간들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다음에도 떠나고 싶다면, 지도에서 가장 외곽에 있는 철길을 찾아볼 것이다. 그 끝에는 또 다른 조용한 바다와 나만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